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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 - (2) 로스차일드 1. 오스트리아의 자금 조달 오스트리아제국은 금융과 관련해서 로스차일드와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제임스 로스차일드의 조카 안셈은 1861년 오스트리아제국 평의회 금융위원회의 위원에 임명되었고, 이에 앞서 1855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크레디탄슈탈트를 설립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은행)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로는 금융 거래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습니다. 안셈은 로스차일드로부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1863년에는 반로스차일드 은행과 프랑스의 크레디트 모빌리에 등에게 손을 벌려 신디케이션으로 자금을 조달합니다. 한편 오스트리아가 1859년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연체가 발생하고 있는 일부 오스트리아 거래를 청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더보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전쟁 - (1) 1.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은 독일통일전쟁 또는 북통일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워털루 전투 이후 독일에는 독일연방이 창설되었습니다. 독일연방은 오스트리아제국, 프로이센, 바이에른, 작센, 하노버왕국, 홀슈타인공국, 프랑크푸르트시 등 총 39개의 회원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866년 발생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은 동부전선(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 남부전선(오스트리아-이탈리아 전쟁), 서부전선(프로이센의 마인 원정)에서 치러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및 이탈리아의 전쟁입니다. 독일연방 내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 분쟁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영유권 다툼에서 촉발되어 프로이센의 홀슈타인 점령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2. 로스차일드 가문 로스차일드는 오래전.. 더보기
로스차일드 가문과 유럽의 역사 - 오스트리아 유럽은 빈 체제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1850년대부터 186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돈이 부족한 나라들이 많았습니다. 1860년대까지 채무가 많은 국가 중 대표적인 국가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에 자금을 대는 은행은 개인은행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표적인 은행이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베트만방크였습니다. 베트만방크는 무역업을 겸해 은행업을 영위했는데 오스트리아 정부가 18세기 말 대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때 신규 자금을 조달해 도와주었습니다. 빈 체제 이후 그 역할은 로스차일드의 빈 하우스가 차지하게 됩니다. 1835년 로스차일드 빈 하우스의 설립자인 살로몬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빈 회의 의장인 메테르니히로 하여금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의 부동산 취득을 허용하게 만들 .. 더보기